난 너에게 편지를 써






사람의 마음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계절은 꽃잎처럼 환하게 피어났다가도, 어떤 계절은 이름 모를 바람 하나에 통째로 낙엽이 되어 흩어진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사랑만은 계절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도, 세월이 사람의 얼굴을 바꾸어도, 사랑은 늘 처음 떠난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견디기 위해 편지를 쓴다.
편지는 종이에 적는 글이 아니라, 길 잃은 마음을 잠시 눕혀두는 작은 방이다.
오늘도 나는 그 방 안에 너를 앉혀 놓고 조용히 이름을 불러본다.
아무도 듣지 않는 목소리로.

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문장인데, 가장 오래 걸려 쓰게 되는 말.
그 한 줄에는 미안했던 날들이 있었고, 다정했던 오후가 있었고, 끝내 붙잡지 못했던 손끝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보내지 못한 편지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우체통 앞에서 끝내 돌아선 사람들의 편지.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향해 접어 넣은 편지.
미안해라고 쓰다가 자존심 때문에 찢어버린 편지.
사랑한다고 적어 놓고 끝내 봉투를 붙이지 못한 편지.
하늘 어디쯤에는 그런 편지만 모여 있는 우체국이 있다.
그곳의 우체부는 주소를 묻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에는 번지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눈물의 무게를 달고, 그리움의 길이를 재어 가장 늦지 않은 순간에 편지를 전해준다.

그러니 내 편지도 언젠가는 네 곁에 닿을 것이다.
봄날 창문을 스치는 바람이 되어.
가을 저녁의 노을이 되어.
혹은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어느 오후가 되어.

사랑은 함께 있는 시간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서로를 함부로 미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간다.
검은 머리를 희게 만들고, 반듯했던 등을 조금씩 굽게 만들고, 기억의 가장자리를 흐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했던 사람의 눈빛만은 늙지 않는다.
그 눈빛은 오래된 사진처럼 바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별처럼 멀어질 뿐이다.
닿을 수는 없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제는 안다.
편지는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나를 살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움을 한 글자씩 적을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무너진 집 한 채가 다시 세워지고, 후회를 한 줄씩 내려놓을 때마다 오래 닫혀 있던 창문 하나가 천천히 열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답장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쓰는 동안만큼은 네가 아직 내 삶의 어딘가를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나는 조금 덜 외롭다.

혹시 먼 훗날,
삶의 마지막 저녁이 찾아와 내 손에서 마지막 편지 한 장이 접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 봉투 앞면에 주소도, 이름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만 적어 둘 생각이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러면 바람은 누구보다 정확한 우체부가 되어 그 편지를 데려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한 사람이 내 삶을 지나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웠음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월이 모든 이름을 희미하게 지운 뒤에도,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을 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의 그리움 속에서 한 장의 편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조용히,
너에게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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