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시의 방
민우의 자취방은 오래된 유품들의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곤 했다. 현장을 다녀온 날이면 의복과 장비에 스며든 묵은 먼지 향이 쉽게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밤, 민우의 작은 원목 스튜디오형 방 안을 채운 것은 낯설고 생생한 숨소리였다.
이동장 문을 열어두었지만, 삼색고양이 봄이는 한참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낯선 공간의 냄새를 맡으려는 듯 분홍빛 코를 경계스럽게 씰룩일 뿐이었다. 민우는 봄이를 강제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이동장 근처에 수건을 깔고, 노인 한성규 씨의 집에서 가져온 원목 캣타워 조각과 자개 상자를 놓아두었을 뿐이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불을 끄고 누운 민우의 귀에 낮은 발소리가 들렸다. 사뿐, 사뿐. 장판 바닥을 딛는 은밀한 마찰음.
봄이는 조심스럽게 방 안을 탐색하다가, 머뭇거리며 민우의 침대 밑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낮게 점프해 민우의 발치에 몸을 동그랗게 말아 누웠다. 노인의 단칸방에서 그랬듯, 민우의 허벅지 너머로 봄이의 골골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어르신이 참 잘 키우셨네요.”
민우는 이불 속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봄이는 낯선 사람의 손길을 무서워하기보다, 누군가의 체온이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안도를 얻는 법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였다. 노인이 6년간 쏟아부은 다정한 시간들이 고양이의 행동 양식 하나하나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다음 날부터 민우는 ‘봄이의 새로운 가족 찾기’에 착수했다.
일반적인 유기동물 입양 카페에 글을 올리는 대신, 민우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품 정리 블로그의 ‘남겨진 이야기’ 카테고리에 글을 쓰기로 했다. 단순히 “고양이 입양합니다”라는 광고글로는 노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어받을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민우는 노인의 방에서 발견했던 스케치북의 그림 몇 장과, 자개 상자 속 사진들, 그리고 녹차 깡통 뒤에서 발견한 편지의 일부분을 정성껏 스캔해 글에 첨부했다.
[임보 일기] 방배동 한성규 어르신이 두고 간 마지막 봄을 전달합니다.어르신은 세상과 담을 쌓고 쓸쓸히 눈을 감으셨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고양이 ‘봄이’의 미래를 염려하셨습니다. 녹차 깡통 뒤에서 나온 꼬깃꼬깃한 돈 봉투와 편지는 노인이 남긴 유산이 아니라, 세상에 청하는 마지막 염치이자 사랑이었습니다.봄이는 사람의 체온을 좋아하고, 밤이면 발치에 누워 가슴을 울리는 골골송을 불러주는 다정한 아이입니다.이 아이의 사료 값으로 노인이 남겨두신 82만 원은 돈의 형태로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봄이를 참된 가족으로 맞아주실 분께 노인의 친필 편지 및 스케치북과 함께 ‘봄이의 첫해 병원 진료비 및 건강검진권’의 형태로 함께 전달될 예정입니다.어르신의 쓸쓸했던 삶의 끝자락을 따뜻하게 완성해 주실 분을 기다립니다.
글을 올린 지 불과 사흘 만에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노인의 편지를 읽고 눈물이 났다’, ‘이런 사연이 있는 고양이라니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글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민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입양 신청서가 십여 건 넘게 접수되었지만, 민우는 단순히 불쌍하다는 동정심이나 호기심으로 신청한 이들을 하나씩 정중히 사양했다. 한성규 노인이 바랐던 것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봄이가 다시는 홀로 남겨지지 않을 ‘영원한 울타리’였기 때문이다.
2. 세 번의 면담과 하나의 인연
일주일 뒤, 민우는 최종적으로 한 사람을 선택했다.
서울 외곽의 작은 도서관에서 서서로 일하는 30대 후반의 여성, 수현 씨였다. 그녀는 신청서에 자신의 화려한 스펙이나 넓은 주거 환경을 자랑하는 대신,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담담히 적어 보내왔었다.
‘3년 전, 오랜 병수발 끝에 어머니를 떠나보냈습니다. 어머니가 떠난 뒤 한동안 집 안의 정적을 견디기가 힘들어 밤마다 불을 켜두고 잠들곤 했습니다. 노인분의 편지를 읽으며, 홀로 남겨졌을 때의 그 기막힌 고요와 쓸쓸함이 어떤 것인지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봄이가 저희 집으로 온다면, 아이가 저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봄이에게 노인분이 주셨던 사랑만큼 깊은 온기를 매일 전해주고 싶습니다.’
민우는 수현 씨를 자신의 자취방으로 초청했다. 첫 면담이 있던 날, 수현 씨는 단정한 차림으로 양손 가득 고양이 간식과 따뜻한 차를 들고 찾아왔다.
방 문이 열리고 수현 씨가 들어서자, 침대 밑에 숨어있던 봄이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빼밀었다. 수현 씨는 고양이에게 갑자기 다가가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방문 앞에 낮게 주저앉아, 봄이의 눈높이에 맞춰 시선을 내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안녕, 봄이야.”
수현 씨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봄이는 수현 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 나와 그녀가 뻗은 손가락 끝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거리는 짧은 탐색 끝에, 봄이는 수현 씨의 손가락에 자신의 뺨을 스윽 비벼댔다. 고양이가 상대에게 보내는 최상의 신뢰 표시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수현 씨의 눈가에 옅은 물기가 어린 것을 민우는 놓치지 않았다.
“봄이가 수현 씨가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민우의 말에 수현 씨는 수줍게 웃으며 봄이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민우는 책상 위에 정갈하게 싸둔 상자를 수현 씨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 안에는 노인의 스케치북, 자개 상자 속 사진들, 편지 원본, 그리고 민우가 노인의 유산으로 대신 결제해 둔 동물의원 건강검진 증서가 들어있었다.
“이건 한성규 어르신이 봄이의 다음 가족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신 유산입니다.”
수현 씨는 편지를 펼쳐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노인의 삐뚤빼뚤한 필체 위에 수현 씨의 눈물이 한 방울 톡 떨어져 번졌다.
“어르신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간절했는지 느껴져요. 이 편지와 스케치북은 저희 집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둘게요. 봄이가 어디서 와서 어떤 사랑을 받던 아이인지 늘 잊지 않겠습니다.”
3. 봄이 온 자리
이삿날은 주말 오후로 정해졌다.
민우는 직접 차를 몰아 봄이와 유품 상자를 싣고 수현 씨의 집으로 향했다. 수현 씨의 빌라는 햇살이 아주 잘 드는 남향집이었다. 거실 한쪽에는 이미 깨끗한 캣타워와 폭신한 방석, 그리고 봄이만을 위한 작은 창가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동장 문이 열리자 봄이는 새로운 집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창가로 비쳐 드는 따뜻한 햇살 아래 봄이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수현 씨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옆에 앉자, 봄이는 자연스럽게 수현 씨의 무릎 위로 머리를 얹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웅웅거리는, 기분 좋은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성규 노인의 단칸방에서 시작되어, 민우의 임시 공간을 거쳐, 마침내 이곳 수현 씨의 거실로 연결된 온기의 완성형이었다.
민우는 작별 인사를 건넸다.
“봄이야, 잘 살아라. 어르신과의 약속, 이제 다 지켰다.”
봄이는 민우를 향해 귀를 쫑긋거리며 야옹, 하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마치 그동안 고마웠다고, 이제 안심하고 떠나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수현 씨의 집을 나와 빌라 계단을 내려오는 민우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계절의 바람이 불어왔지만, 민우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묵직하고 따뜻한 덩어리가 남아있었다. 유품 정리사라는 직업은 늘 타인의 삶이 끝난 폐허만을 마주하는 고독한 작업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민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정리하는 것은 죽음의 흔적이 아니라, 죽음조차 끊어내지 못한 사랑의 유산이라는 것을.
민우는 차에 올라타기 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높은 가을 하늘 위로 투명한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방배동 단칸방의 어둠 속에서 고양이를 품에 안고 홀로 눈을 감았을 한성규 노인도, 이제는 그곳에서 봄이가 누리고 있을 따스한 햇볕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으리라.
민우는 시동을 걸었다. 다음 현장으로 향하는 길, 그의 차 안에는 노인이 남긴 ‘봄’의 향기가 여전히 기분 좋게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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