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정리사의 손끝에 남은 온기 2-1화

 



1. 침묵의 궤적


도심의 허파를 죄어오는 구도심의 이면도로는 여름과 가을 사이, 썩어가는 습기를 머금은 채 축축하게 침전해 있었다. 방배동의 골목은 오래된 시멘트 벽에 핀 이끼와 수명을 다한 외등의 녹슨 가스 냄새로 차 있었다. 유품 정리사 민우는 낡은 다세대주택의 녹청색 철문을 밀었다.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계단실의 고요를 길게 찢었다.

302호. 문 앞에 붙은 노란색 압류 계고장과 서류 봉투들은 오랫동안 바깥과의 호흡이 단절되었음을 알리는 부고장과 같았다. 경찰의 현장 감식이 끝나고, 시신이 수습된 지 사흘 뒤였다. 방 안의 공기는 어둡고 서늘할 것이라는 민우의 지레짐작을 비웃듯, 문을 열자마자 밀려든 것은 묵직하고 밀도 높은 뜻밖의 온기였다.

창문 틈새로 빗겨 들어온 오후 네 시의 서향 햇살이 공기 중에 정지된 먼지 입자들을 주황빛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람의 숨이 끊어진 지 이주일. 대개의 현장을 지배하는 것은 썩어가는 부패의 악취나 생이 마지막으로 몸부림친 시커먼 흔적이었으나, 이 단칸방은 기이할 정도로 정갈했다. 낮게 웅웅거리는 냉장고 컴프레서 소리 외에는 아무런 파동도 없는, 완벽히 고립된 수중의 침묵이었다.

민우는 현관에 덧신을 신으며 고무장갑의 끝자락을 고쳐 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로 시선을 내렸다.

원목 캣타워의 가장 높은 칸, 동그랗게 웅크린 노란 삼색고양이 한 마리가 민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낮빛을 받아 얇은 바늘처럼 가늘어진 눈동자는 낯선 방문자의 등장에도 도망치거나 하악질을 하지 않았다. 고양이는 그저 거대한 고요의 축처럼, 무겁고 투명한 시선으로 민우의 동선을 따라 눈동자만을 천천히 움직였다.

“안녕.”

민우가 낮은 음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소리는 벽지에 흡수되어 흩어졌다. 고양이는 귀 끝을 살짝 쫑긋거렸을 뿐, 어떠한 경계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캣타워 밑바닥에는 바짝 마른 사료 알갱이 몇 개가 바닥을 긁고 있었고, 세 개의 도자기 물그릇은 이미 바닥을 노랗게 드러낸 지 오래였다. 세상을 떠난 노인은 심장이 멈추기 직전, 자신의 부재를 예감이라도 한 듯 집 안 곳곳의 그릇마다 물과 사료를 넘치도록 채워두었던것 같다.

고인의 이름은 한성규. 향년 71세. 이웃과의 교류가 완벽히 차단된 독거노인이었고, 경찰이 기록한 단정한 공식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민우는 상자를 펼쳐 놓기 전에 캣타워 아래에 깨끗한 생수를 따르고, 가져온 습식 캔 하나를 따서 놓아주었다. 삼색고양이는 잠시 민우의 손길을 살피더니, 낮은 자세로 사뿐히 내려와 혀를 날름거리며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챱챱, 소리가 방 안의 침묵을 잘게 부수며 퍼졌다.

민우는 고양이의 등 단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작은 생명체는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다. 노인이 거친 숨을 내쉬며 차가운 장판 위로 비틀거려 쓰러지던 순간, 밤이 찾아오고 방 안의 체온이 점차 식어 밤의 기온과 평형을 이루어 가던 아득한 시간들, 그리고 홀로 남겨진 고양이의 코끝에 닿았던 서늘한 노인의 손가락을.

민우는 유품 정리의 장비를 정리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유품 정리는 단순히 쓰레기를 분류하고 버리는 작업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하며 남긴 흔적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가 두고 간 텍스트와 오브제들을 조합해 그 삶의 마지막 문장을 완성해 주는 번역 작업이었다.


2. 박제된 시간들의 서랍


방 안은 극도로 단출했다. 낮은 서랍장 하나, 작고 노란 찻상, 그리고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책장과 캣타워가 전부였다. 민우는 서랍장의 첫 번째 칸을 열었다.

빛바랜 양말들과 몇 가지의 모시 옷, 그리고 구청 복지과에서 발행한 서류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통장 잔액은 43만 2,000원. 병원 진료 기록지와 영수증, 그리고 혈압약과 심장약 봉지들이 수북했다. 노인의 삶은 이미 오랫동안 사회적 서사 바깥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때, 물과 사료를 비운 고양이가 민우의 곁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고양이는 민우의 작업 바지 끝단에 몸을 스윽 밀어 넣으며 체온을 나누더니, 서랍장 밑에 바짝 붙어 있던 작고 까만 목재 상자를 앞발로 툭툭 쳤다. 마치 오래전부터 누군가 오면 이것을 보여주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안에 뭐가 있니?”

민우는 고양이의 눈짓을 따라 목재 상자를 집어 들었다. 손때가 까맣게 탄, 자개 장식이 살짝 벗겨진 오래된 궤였다. 뚜껑을 열자 익숙한 한지 냄새와 함께 수십 장의 인화 사진, 빛바랜 옐로 톤의 스케치북, 그리고 도자기 재질의 작은 손거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들의 시간 축은 명확히 갈라져 있었다.

가장 아래쪽에 깔린 흑백 사진 속 노인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단정한 양복을 입은 여인의 손을 잡고 있었고, 그 곁에는 아주 어린 아이의 백일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행복의 기표들은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끊겨 있었다. 오래된 주민등록등본의 뒷면에는 아내와 딸의 이름 위로 붉은선이 그어져 있었다. 20년 전, 대형 교통사고로 가족을 한날한시에 잃었다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상자의 상단에 위치한 최근의 컬러 사진들 속 주인공은 전부 단 하나였다. 바로 민우의 옆에서 노란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는 이 삼색고양이.

민우는 빛바랜 스케치북을 펼쳤다. 거친 연필 선과 목탄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모조리 고양이의 일상이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웅크려 졸고 있는 모습,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는 정수리의 귀여운 곡선, 창밖의 비둘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고양이의 뒷모습. 그림 아래에는 세필로 정갈하게 적힌 날짜와 짧은 메모들이 적혀 있었다.

‘2018년 11월 4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골목길, 쓰레기 더미 옆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떨고 있던 너를 안고 왔다. 손바닥만 한 몸통에서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던지. 네 이름을 ’봄‘이라 지었다. 아내와 은지가 떠난 뒤 멈춰버린 내 삶에도 다시 봄이 올 수 있을까.’

‘2020년 3월 15일. 봄이가 처음으로 내 무릎 위로 올라와 골골송을 불렀다. 진동이 내 바지를 타고 들어가 허벅지와 뼈마디를 울렸다. 십수 년 만에 가슴속 깊은 곳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이 작은 생명이 내게 다시 가르쳐주고 있다.’

민우는 서성이는 고양이 봄이를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진 스케치북 위로 조심스럽게 발을 얹었다. 연필 자국이 봄이의 흰 발가락 끝에 옅게 묻어났다.

스케치북의 가장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자, 그곳에는 고양이의 그림이 아닌 이 단칸방의 구조도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주방 선반, 찬장, 그리고 작게 표시된 X표시. 그림 밑에는 떨리는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구청 복지관에서 나오는 도시락을 반으로 나눠 봄이에게 살코기를 떼어주었다. 주방 선반 두 번째 칸, 초록색 녹차 깡통 뒤에 작은 비닐봉투를 숨겨두었다.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이 아이만 홀로 남겨질 때를 대비한 것이다. 이것은 내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염치이자, 봄이를 거두어줄 이에게 바라는 염치없는 부탁이다.’


3. 녹차 깡통 뒤의 유산


민우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먼지와 기름때가 겹겹이 쌓인 주방 찬장 두 번째 칸. 낡은 찬장 문을 열자 서늘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먼지 속에 묻혀 있던 초록색 녹차 깡통을 치우자, 그 뒤편 벽 깊숙한 구석에서 이중으로 꽁꽁 묶인 비닐봉투가 나왔다.

봉투를 열자 꼬깃꼬깃하게 접힌 5만 원권 지폐 여러 장과 1만 원권 지폐들이 묵직하게 들어있었다. 그리고 도화지를 바르게 접어 만든 편지 한 장. 돈은 모두 합쳐 82만 원이었다. 하루하루 정부 보조금과 폐지 수거로 연명하던 노인이 매달 몇만 원씩, 고양이의 미래를 위해 수년간 아끼고 모아둔 피 같은 돈이었다.

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다. 수신인은 ‘우리 봄이를 거두어주실 고마운 분께’였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고마운 분께.

저는 오래전 가족을 잃고 홀로 늙어온 한성규라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남길 흔적도 없는 제게 이 아이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유일한 온기이자 빛이었습니다.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이 아이의 체온과 숨소리가 없었다면 저는 진작에 스스로 삶을 놓았을 것입니다. 봄이는 제게 단순한 가축이나 반려동물이 아니라, 제 삶을 지탱해 준 마지막 가족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자는 듯 눈을 감아 이 아이만 홀로 방 안에 남겨지게 되거든,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를 아무도 찾지 않는 시유 보호소로 보내어 차가운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디 따뜻한 사람의 품으로,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으로 보내주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봉투 안에 든 돈은 그동안 내가 조금씩 모아둔 아이의 사료 값과 예방접종비입니다. 턱없이 부족하고 초라한 금액이겠지만, 내 생에 남은 전부입니다. 이 돈으로 아이의 건강을 한 번만 살펴주시고, 좋은 주인을 찾아주신다면 죽어서도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 불쌍한 아이를 저처럼 쓸쓸하게 두지 말아 주십시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민우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언론과 행정 기관은 노인의 죽음을 ‘고독사’라는 세 글자로 건조하게 분류할 것이었다. 사회적 관계망의 절단, 경제적 빈곤, 불쌍하고 비참한 독거노인의 쓸쓸한 폐허. 그것이 세상이 정의하는 한성규라는 인물의 마지막 좌표였다.

그러나 지금 이 방 안에서 민우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결코 파산한 삶의 폐허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작은 생명의 미래를 염려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안위를 부탁했던 한 인간의 고결하고 숭고한 사랑의 흔적이었다. 노인은 외롭게 죽어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 온기를 고양이에게 온전히 전해준 뒤 조용히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

“야옹.”

어느새 주방까지 따라온 봄이가 민우의 바짓가랑이에 머리를 비벼댔다. 그 울음소리는 슬픔이나 공포가 아니었다. 마침내 주인 노인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정확히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한 생명체의 조용한 안도감이었다.

민우는 장갑을 벗었다. 맨손을 내밀자, 봄이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이마를 민우의 손바닥에 단단히 밀어붙였다. 민우의 손끝으로 고양이의 따뜻한 체온과 함께, 목에서 울려 나오는 골골송의 진동이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그것은 노인이 세상을 떠나며 고양이에게 남긴 체온이었고, 이제 고양이가 민우에게 전해주는 생명의 불씨였다.


4. 남겨진 자들의 체온


유품 정리는 오후 늦게야 끝이 났다.

노인이 쓰던 이불과 낡은 옷가지들은 폐기물 봉투에 담겼고, 세월의 때가 탄 가구들은 스티커가 붙은 채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방 안은 비워졌지만, 결코 텅 빈 느낌이 들지 않았다.

민우는 유품 상자 하나를 따로 빼두었다. 그 안에는 노인의 스케치북, 자개 상자 속 아내와 딸의 사진, 그리고 녹차 깡통 뒤에서 발견한 편지와 돈 봉투를 바르게 정리해 담았다. 노인의 물질적 유산은 버려지겠지만, 이 사랑의 서사만큼은 봄이가 가게 될 새로운 집으로 함께 이동할 것이었다.

민우는 준비해 온 이동장을 바닥에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봄이는 잠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6년간 노인과 함께 거주했던 공간, 햇살이 들어오던 캣타워의 꼭대기, 그리고 노인이 마지막으로 누워있던 장판 바닥을 가만히 시선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민우는 이동장의 문을 잠그고 잠시 방 한가운데에 섰다. 텅 빈 방 안으로 노을빛이 깊게 비쳐 들고 있었다.

“어르신, 걱정하지 마십시오.”

민우는 허공을 향해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읊조렸다.

“봄이는 절대로 차가운 곳으로 가지 않을 겁니다. 어르신이 남겨주신 마음, 빠짐없이 전부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건물을 나와 철문을 닫자, 서늘한 가을 바람이 골목길을 쓰러뜨릴 듯 불어왔다. 그러나 민우의 손에 들린 이동장 내부에서는 봄이의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온기가 끊임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차에 올라탄 민우는 이동장의 그물망 틈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봄이가 민우의 손가락을 혀로 살짝 핥았다. 까칠하지만 따뜻한 감촉이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끊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생전보다 더 강력한 온기로 남아 살아있는 자들의 삶을 건드린다. 한 노인이 작고 약한 생명에게 베풀었던 사랑은 고양이의 체온이 되어 민우에게 건네졌고, 이제 민우는 그 체온을 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향해 차를 몰았다.

구도심의 어두운 골목길을 벗어나는 민우의 차창 밖으로, 노을이 붉은 비단처럼 세상의 모든 외로운 지붕들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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